2022년에 알게 된 양귀자님의 소설(혹은 에세이집 혹은 르포집) '지구을 색칠하는 페인트공'
큰 제목 아래 6개의 작은 제목, 그 아래 다시 작은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원미동엽서
시인의 집
숲을 지나온 사람
내가 아는 사람들
가시 박힌 땅
1999년의 재회
'새날'은 원미동엽서 안에 포함되어 있는, 채 5페이지가 되지 않는 짤막한 이야기입니다.
1. 대략의 이야기
지숙이 엄마는 원미동 낡은 연립을 소유하고 그곳에 사는데요, 아주 지독하게 절약을 합니다. 남편이 서울 강북 끝자락으로 출근을 하니 출퇴근 거리가 길어서 야근이라도 있는 날이면 귀가하지 못하고 숙직실에서 자야하거든요. 남편 직장 근처로 이사하려니 원미동의 집값과 서울의 그것이 어디 비교대상이라도 되나요? 악착같이 모아서 목돈을 좀 만들어 서울로 집을 보러 다닙니다. 한 달만에 금액에도 맞고 마음에도 드는 집을 봐두고 본인이 살던 집을 부동산에 냅니다.
그런데 원하는 가격에 팔리지 않아 시간이 흐르고 몇 달이나 지나 집이 팔립니다. 계약금을 들고 전에 봐둔 그 서울집을 사러 갔는데, 부동산 광풍으로 집값은 이미 감당할 수 없을만큼 뛰어버린 참이었습니다. 지숙이 엄마는 서울집을 사지 못하고 원미동의 새집으로 이사가는 것으로 만족해야했습니다
반면, 개포동친구는 남의 집에 사고 있었으니 지숙이네보다 나은 형편은 아니었습니다. 남편이 대기업에 다니는 덕에 직장조합에서 집을 분양받습니다. 무척 부담되는 가격으로 겨우겨우 돈을 치루고 이사를 가죠. 부동산 광풍은 당연히 개포동에도 불어서 하루가 다르게 가격이 뜁니다. 본인도 믿지못할 만큼 가격이 오르고 또 오르는 개포동사모님이 되어 정부 정책에 대해 시장참여자로서 "급하지 않을 바에야 지금 팔 바보가 어딨니? 값이 떨어졌다해도 그 가격에 거래되는 경우도 없고 말야. 모두들 꽉 쥐고 기다리는 거야. 또 새날이 온다 이거지." 라고 한 마디 보탤 수 있는 입장이 됩니다.
이제는 서울 아파트 입성을 포기한 지숙이 엄마는 "그까짓 오십 만원, 백 만원 떨어질들 우리네 수준에 무슨 꿈을 꾸겠어요? 오를 때는 천 만원씩 이천 만원씩 오르고, 내릴 때는 백 만원 이백 만원 내리면 결국 그게 그거지 뭐예요. 우리같은 서민이야 꾹 참고 기다려 볼밖에요. 언젠가는 새날이 오겠지 하고 말예요."합니다.
2. 어땠을까?
지숙이 엄마가 조금 더 다르게 행동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봅니다.
1) 시세변화 확인
지숙이 엄마가 시세가 어떻게 되는지 계속 모니터링했으면 어땠을까? 오직 남편 회사 근처로 이사가야한다는 본인 목적만을 생각하고 시장의 흐름에는 무관심했습니다. 집값이 무섭도록 오르는 현상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저축한 돈을 들고 집을 구하기 위해 한 달을 발품을 파는 동안에도 시세가 변동했을 것인데 알아차리지 못했나봅니다. 개포동친구는 본인의 자산가치가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과 대조적이네요.
본인이 가진 낡은 집을 본인이 원하는 가격에 파느라 외면했던 몇 달동안 지붕을 뚫고 올라가버린 시세를 접하게 됩니다. 본인의 낡은 원미동 연립이 몇 달간 가격이 올랐으면 서울 아파트의 시세는 말할 것도 없다는 것을 몰랐나 봅니다.
2) 매물량 확인
지숙이 엄마가 이사하고 싶은 곳을 매물이 어떻게 소진되는지 소진된다면 그 속도가 어떤지에 대해 지켜보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집을 사러 가는 날에 보아둔 집이 팔렸으면 어쩌지? 단지가 크지 다른 물건이 있겠지. 가격이 올랐어도 감당가능한 수준이겠거니하며 본인이 마음 편한 방향으로 생각합니다. 매물량이 급속히 줄어들고 거래가 활발해지면서 가격이 급등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 텐데요. 부동산시장이 요동을 친다는 뉴스도 쉽게 접했을 것 같은데 지숙이 엄마는 뉴스를 안보았나봐요.
3) 전세끼고 아파트사기 = 갭투자
이전부터 있었고 지금은 갭투자라는 우아한 말로 단장한 투자방식. 전세끼고 아파트를 사두었다면 어땠을까? 1987년 다가구주택을 지었던 저희 부모님도 세입자 전세금을 받아 건축회사에 지불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지방 다가구도 세입자 레버리지를 활용할 정도이니 수도권이야 전세끼고 집을 사는 것이 드문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다주택자라 하더라도 취득세라는 장애물도 없던, 주택 매수 호시절이었는데...
4) 대출의 활용
대출을 활용하면 어땠을까? 적금금리도 20% 넘던 시절이고 대출받는 것 자체가 어려웠던 시기였을 것입니다. 그래도 혹시나 대출을 활용하면 이자를 내고도 그 이상의 자산증식이 가능했을 것 같습니다. 지숙이 엄마가 집을 본 것이 봄이었고 원미동 연립이 팔린 것이 7월중순이라고 했으니 약 5개월간 서울 아파트의 가격이 1350만원 뛰어버린 것입니다. 지숙이 엄마가 집을 보러간 시점에는 부족한 금액이 이것보다는 적었으니 20%넘는 이자를 내더라도 서울로의 이사라는 가능성은 훨씬 높아지는 대안인 것 같아요.
5) 대체지역의 검토
지숙이 엄마가 의정부, 중랑구, 노원구 등 다른 지역을 보았다면 어땠을까? 지숙이 아빠가 강북의 끄트머리에 있는 회사를 다니니 강북의 동쪽을 보았다면 대안을 발견할 수 있지 않았을까? 지금도 강북보다는 그 바깥쪽의 시세가 낮게 형성되고 있고 아마도 그 당시도 그랬을 것 같은데. 1호선라인으로 조금 더 외곽으로 동북으로 조금만 더 알아보았으면 다른 선택지도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을 자꾸 하게 되요.
3. 새날
지숙이 엄마의 새날과 개포동친구의 새날은 같은 새날이 아닌데 두 사람 모두 새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떤 새날이어야 하는 걸까요? 나는 어떤 새날을 기다리는 사람인지...
잔상이 오래남는 글이었습니다.
(양귀자 소설가는 1980년대 주요 리얼리즘 작가라고 합니다. 2020년대 리얼리즘 작가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어 보입니다. 어쩜 이리도 지금과 비슷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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